제5부 ― 지도 끝의 표지판
우리는 소르피갈을 떠나기 전날 밤, 여관 식당의 가장 구석진 자리에 모였다.
탁자 위에는 지금까지 그린 지도들이 펼쳐져 있었다. 소르피갈의 거리, 지하동굴의 통로, 도시 밖 숲과 미친 마법사의 동굴.
지도 바깥에는 아직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넓은 여백이 남아 있었다.
나는 소르피갈에서 서쪽으로 짧은 선을 그었다.
“에를리퀸은 이쪽에 있어.”
“경비병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만 믿고 가는 건가?”
브람이 물었다.
“다른 단서는 없어.”
“상당히 믿음직한 계획이군.”
가레스가 지도를 내려다보았다.
“길이 갈라지면 서쪽을 우선하되, 해가 지기 전에 야영지를 찾는다. 물과 식량도 일정량 이하로 줄어들면 돌아오는 편이 좋겠어.”
“동의해.”
내가 대답했다.
가레스는 열세 번의 시련을 겪은 뒤부터 내 결정을 공개적으로 거스르지 않았다. 대신 내가 놓치는 위험을 미리 지적했다.
처음에는 그것이 감시처럼 느껴졌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가 나를 믿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렌은 지도보다 창밖의 하늘을 보고 있었다.
“내일 비가 올 수도 있어.”
“구름이 없는데?”
미라가 물었다.
“바람 냄새가 달라졌어.”
엘리안은 식량 꾸러미를 여섯 등분했다. 각자의 배낭에 나누어 담으면 누군가 짐을 잃어도 전부 굶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브람은 청동 열쇠 두 개를 손가락에 걸고 돌렸다.
“이건 모두 내가 보관하지.”
가레스가 말했다.
“하나는 루나가 갖는 편이 안전하다.”
“나를 못 믿는 건가?”
“한 사람이 두 개를 모두 잃는 일을 막자는 뜻이다.”
브람은 잠시 생각하더니 열쇠 하나를 내게 건넸다.
“팔라딘에게도 가끔 쓸 만한 생각이 떠오르는군.”
“칭찬으로 받아들이겠다.”
가레스의 대답에 브람은 또다시 할 말을 잃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서쪽 성문을 통과했다.
이번에는 돌아갈 시간을 정해두지 않았다. 에를리퀸을 찾을 때까지 소르피갈로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우리는 C-2의 황야를 가로질러 북쪽으로 향했다.
이미 지나온 숲과 들판이었지만 배낭의 무게와 마음가짐이 달랐다. 이전에는 언제든 소르피갈로 돌아갈 수 있는 거리만 탐험했다.
이제 도시와의 거리는 계속 멀어졌다.
집시 예언자의 천막이 있는 숲을 지나면서 미라는 몇 번이나 그쪽을 바라보았다.
“다시 가보고 싶어?”
내가 물었다.
“수정구슬을 한 번만 더 보면 구조를 알 수 있을 것 같아.”
“수정구슬을 보려는 거야, 훔치려는 거야?”
브람이 말했다.
“나는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아.”
“분해한 뒤 원래대로 조립하지 못하는 건?”
“연구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불가피한 손실이지.”
가레스가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말했다.
“천막으로 가지 않는다.”
미라는 입을 다물었다.
숲을 벗어나자 지형이 조금씩 달라졌다. 나무 사이의 거리가 넓어졌고 평탄한 초원이 나타났다.
나는 지도 끝에 새로운 칸을 그렸다.
우리는 그 지역을 C-1이라고 표시했다.
그 이름은 우리가 정한 편의를 위한 구분에 불과했다. 그러나 빈 공간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 낯선 세계의 일부가 우리 것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실렌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수레가 지나간 흔적이 있어.”
풀밭에는 두 줄의 바퀴 자국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최근에 생긴 것은 아니었지만 완전히 지워지지도 않았다.
“에를리퀸으로 가는 상인들의 길일지도 몰라.”
엘리안이 말했다.
우리는 수레 자국을 따라갔다.
그 길의 끝에서 부서진 수레 한 대를 발견했다.
한쪽 바퀴는 빠져 있었고 짐칸은 옆으로 넘어져 있었다. 깨진 병과 찢어진 포대, 빈 상자들이 주변에 흩어져 있었다.
실렌은 수레에서 조금 떨어진 땅을 살폈다.
“싸움이 있었어.”
“언제?”
“며칠 이상 지났어.”
가레스가 검을 뽑았다.
“시신은?”
“없어.”
그 대답은 우리를 더욱 긴장시켰다.
누군가 시신을 가져간 것일 수도 있고, 수레 주인이 살아서 도망친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수레 아래에는 검게 마른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브람이 짐칸 안을 조사했다.
“가져갈 만한 물건은 대부분 사라졌군.”
가레스가 그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구조할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나도 그래. 짐을 그대로 두고 달아났다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
브람은 수레 밑으로 몸을 숙였다. 잠시 뒤 작은 가죽 주머니를 꺼냈다.
안에는 금화 몇 닢과 금속 증표가 들어 있었다.
증표 앞면에는 수레바퀴와 저울이 새겨져 있었다. 뒷면에는 우리가 모르는 글자가 있었다.
“상인들의 통행증 같아.”
미라가 말했다.
“글자를 읽을 수 있어?”
“전부는 아니지만 물품과 통행에 관한 문장이야.”
가레스가 주변을 살폈다.
“주인이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브람이 물었다.
“그래도 남의 물건이다.”
“여기 두면 다음 괴물이나 도적이 가져가겠지.”
둘의 시선이 부딪쳤다.
나는 증표를 받아 들었다.
“우리가 보관한다.”
가레스가 나를 바라보았다.
“주인을 만나면 돌려준다. 그렇지 않더라도 이 수레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되면 판단할 수 있겠지.”
가레스는 잠시 후 고개를 끄덕였다.
브람이 웃었다.
“결과적으로는 가져가는 거군.”
“보관하는 거야.”
“기사와 도적은 물건을 가져간 뒤 부르는 이름만 다르군.”
가레스가 대답하기 전에 실렌이 손을 들었다.
“누군가 보고 있어.”
우리는 곧바로 무기를 들었다.
그러나 실렌의 시선은 풀숲이 아니라 멀리 있는 언덕을 향하고 있었다.
그 위에 검은 형체 하나가 서 있었다.
사람인지 괴물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바람에 긴 망토 같은 것이 흔들렸다.
“저 사람에게 물어볼까?”
엘리안이 말했다.
실렌이 고개를 저었다.
“이미 가고 있어.”
형체는 언덕 뒤로 사라졌다.
우리가 올라갔을 때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발자국조차 찾을 수 없었다.
오후가 되자 두 개의 샘을 발견했다.
서로 바로 옆에 있었지만 물빛은 완전히 달랐다. 하나는 붉은 기운을 띠었고, 다른 하나는 푸른빛을 내고 있었다.
주변에는 짐승의 발자국이 없었다.
가레스가 물가에 무릎을 꿇었다.
“마시지 않는 편이 좋겠어.”
“동의해.”
엘리안이 물을 작은 병에 담았다.
“먼저 확인해보자.”
미라는 이미 푸른 샘 위로 몸을 숙이고 있었다.
“마력이 느껴져.”
“그래서 더 위험한 거야.”
엘리안이 그녀를 뒤로 잡아당겼다.
브람은 붉은 샘을 바라보다 손가락으로 물을 찍었다.
“특별한 냄새는 없는데.”
“브람.”
가레스가 경고했다.
“마시지 않았어.”
브람은 손가락의 물을 털어냈다.
우리는 샘물을 각각 병에 담은 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야영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날 밤 괴물들이 야영지를 습격했다.
놈들은 어둠을 틈타 네 방향에서 접근했다. 실렌이 먼저 움직임을 알아채지 못했다면 잠든 채 공격당했을 것이다.
전투 중 가레스의 방패가 적의 무기에 걸렸다.
그는 상대를 밀어내려 했지만 수가 너무 많았다.
그때 브람이 붉은 샘의 물이 담긴 병을 집어 들었다.
“무슨 짓이야?”
엘리안이 외쳤지만 브람은 이미 물을 마신 뒤였다.
그의 몸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브람?”
나는 그가 독에 중독된 줄 알았다.
그러나 브람은 자신을 덮친 괴물을 양손으로 밀어냈다. 인간보다 큰 몸집의 괴물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날아갔다.
브람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거…… 꽤 괜찮은 물인데?”
그는 평소라면 들지도 못할 바위를 들어 다른 괴물에게 던졌다.
“조금 남겨!”
미라가 푸른 물병을 집었다.
“너까지 마시지 마!”
엘리안이 막으려 했지만 늦었다.
미라가 물을 마시는 순간 주위의 공기가 흔들렸다.
그녀의 눈동자에 푸른빛이 번졌다.
“보여.”
미라가 중얼거렸다.
“뭐가 보여?”
“주문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사용하지 못했던 주문을 외웠다.
불꽃이 아니라 거대한 번개가 밤하늘을 갈랐다.
우리를 둘러싸던 괴물들이 한꺼번에 쓰러졌다.
전투는 순식간에 끝났다.
브람과 미라는 한동안 샘물의 힘을 유지했다.
브람은 야영지 근처의 큰 나무를 혼자 움직일 수 있었고, 미라는 아직 배우지 않은 주문의 구조를 설명했다.
그녀의 말은 너무 빨라 누구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이 힘을 이용하면 에를리퀸까지 훨씬 빨리 갈 수 있어.”
브람이 말했다.
“샘으로 돌아가서 물을 더 가져오자.”
가레스는 반대했다.
“효과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방금 목숨을 구했다는 건 알지.”
“대가가 있을 수도 있어.”
엘리안은 두 사람의 상태를 계속 살폈다.
“오늘은 쉬는 편이 좋겠어.”
“이 힘이 사라지기 전에 움직여야 해.”
미라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평소보다 강한 흥분이 묻어 있었다.
“지금이라면 어떤 적이 나타나도—”
“쉰다.”
내가 말했다.
브람이 나를 바라보았다.
“샘의 힘을 낭비하는 건데.”
“그 힘이 얼마나 오래가는지, 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몰라.”
“두려운 거야?”
그 말에 잠시 화가 났다.
열세 번의 시련을 통과한 뒤, 나는 우리가 이전보다 강해졌다고 생각했다. 조금 전의 승리는 그 생각을 확신으로 바꾸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힘이 아니었다.
정체를 모르는 물에 빌린 힘이었다.
“그래. 두려워.”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러니까 움직이지 않는다.”
브람은 더 말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샘물의 효과는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미라는 전날 사용했던 주문을 기억하지 못했다. 구조는 희미하게 떠올랐지만 실제로 마력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
브람은 평소처럼 자신의 배낭을 들어 올리다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 넘어졌다.
가레스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대가는 없었던 것 같군.”
“힘이 사라진 것 자체가 대가지.”
브람은 아쉬운 얼굴로 샘이 있는 방향을 돌아보았다.
나는 지도에 두 샘의 위치를 표시했다.
위급한 상황에서는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힘을 진짜 실력으로 착각해서는 안 됐다.
우리는 다시 서쪽으로 향했다.
초원이 끝나고 낮은 산과 바위가 나타났다. 길은 여러 갈래로 나뉘었고, 몇몇 길은 절벽이나 막다른 골짜기로 이어졌다.
실렌이 바위 위에 올라가 주위를 살폈다.
“북서쪽에 표지판이 있어.”
우리는 그녀가 가리킨 방향으로 향했다.
오래된 나무 표지판에는 두 개의 지명이 적혀 있었다.
동쪽 화살표 아래에는 소르피갈.
서쪽 화살표 아래에는 에를리퀸.
양피지를 받은 뒤 처음으로 발견한 분명한 길이었다.
엘리안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잘못된 방향은 아니었어.”
브람이 표지판을 두드렸다.
“이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벽뿐만 아니라 표지판도 믿지 않는군.”
가레스가 말했다.
“길에서 오래 살려면 글자보다 발자국을 믿어야 해.”
실렌이 서쪽 길을 살폈다.
“사람과 수레가 다닌 흔적이 있어. 오래되긴 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는 지도 위에 굵은 선을 그었다.
소르피갈과 에를리퀸을 잇는 첫 번째 길이었다.
해가 저물 무렵, 우리는 C-1 지역의 서쪽 끝에 도착했다.
눈앞의 지형은 지금까지와 달랐다.
길 양쪽으로 산맥이 솟아 있었고, 멀리 검은 돌로 지어진 두 개의 성이 보였다. 하나는 북쪽 산기슭에, 다른 하나는 남쪽의 바위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두 성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같은 돌과 같은 양식으로 지어진 쌍둥이처럼 보였지만, 그 사이에는 어떤 길도 이어져 있지 않았다.
미라가 두 성을 바라보았다.
“누가 일부러 저렇게 지은 것 같아.”
“서로를 감시하려고?”
엘리안이 물었다.
“아니면 가운데에 있는 무언가를 지키려고.”
바람을 타고 종소리가 들렸다.
먼저 북쪽 성에서 한 번.
잠시 뒤 남쪽 성이 대답하듯 두 번.
실렌이 활을 들었다.
“우리가 온 걸 본 것 같아.”
“이 거리에서?”
브람이 물었다.
“망루에 사람이 있어.”
가레스는 두 성 사이의 길을 바라보았다.
“에를리퀸은 저 너머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나는 배낭 속 양피지를 확인했다.
봉인은 여전히 온전했다.
“계속 간다.”
“해가 거의 졌어.”
엘리안이 말했다.
“지역 경계만 넘고 야영할 곳을 찾자.”
우리는 두 성 사이로 이어지는 서쪽 길을 걸었다.
경계를 넘는 순간 바람이 차가워졌다.
뒤에는 우리가 그려온 C-1 지역의 지도가 있었다.
앞에는 두 개의 검은 성과 아직 찾지 못한 에를리퀸이 있는 새로운 땅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새 양피지를 꺼냈다.
윗부분에 B-1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첫 번째 선을 그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