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 열세 번의 시련
동굴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정오도 지나지 않았다.
숲 위로 햇빛이 밝게 비치고 있었지만 입구 안쪽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빛을 받아들이지 않는 구멍이 땅에 뚫려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동굴 앞에서 마지막으로 장비를 점검했다.
실렌은 화살 한 발을 꺼내 입구 안으로 쏘았다.
화살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돌바닥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생각보다 멀리 날아가지는 않았다.
“바로 앞에서 길이 꺾여 있어.”
그녀가 말했다.
가레스가 방패를 들고 선두에 섰다.
“내가 먼저 간다.”
나는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같이 가.”
“좁은 길이면 둘이 방해가 될 수 있어.”
“그건 안에 들어가 보고 판단하지.”
가레스가 무언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브람이 뒤에서 작게 말했다.
“벌써 지휘관이 둘이군.”
나는 들었지만 대꾸하지 않았다.
미라가 빛을 만들었다. 손바닥 위에서 피어난 푸른 구체가 천천히 떠올라 우리 머리 위에 머물렀다.
가레스와 내가 나란히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나머지 네 사람의 발소리가 뒤따랐다.
동굴 안쪽은 자연적으로 생긴 공간처럼 보이지 않았다.
벽은 일정한 높이로 깎여 있었고 바닥은 돌판을 맞춘 것처럼 평평했다. 천장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금속 고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박혀 있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규칙적인 마찰음이 커졌다.
돌과 금속이 끊임없이 맞물리는 소리였다.
실렌이 갑자기 멈췄다.
“앞쪽 바닥.”
나는 미라의 빛을 낮췄다.
처음에는 다른 곳과 똑같은 돌바닥으로 보였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니 표면의 먼지가 한 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가레스가 발끝을 올렸다.
“밟지 않는 편이 좋겠군.”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뒤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돌문이 내려오는 소리였다.
입구로 이어지던 통로가 막히고 있었다.
“뛰어!”
우리는 앞으로 달렸다.
가레스가 움직이는 바닥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그의 몸이 옆으로 밀려났다. 나 역시 발밑에서 강한 힘을 느꼈다. 바닥 전체가 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뒤쪽으로 밀려!”
실렌이 외쳤다.
우리는 벽에 손을 대고 버티려 했지만 바닥은 끊임없이 우리를 밀어냈다.
미라가 균형을 잃었다.
그녀의 작은 몸이 빠르게 통로 끝으로 미끄러졌다.
브람이 몸을 던져 미라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러나 그 역시 바닥 위에서 함께 끌려갔다.
통로 끝의 어둠 속에서 괴물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밧줄!”
내가 외쳤다.
실렌이 허리에 묶어둔 밧줄을 풀어 내게 던졌다. 나는 한쪽 끝을 가레스에게 넘기고 반대쪽을 붙잡은 채 브람에게 몸을 기울였다.
브람이 미라를 놓치지 않으려 이를 악물고 있었다.
“조금만 버텨!”
“조금이라는 말이 구체적으로 몇 초지?”
가레스가 벽의 금속 고리에 밧줄을 감았다.
우리는 힘을 합쳐 두 사람을 끌어당겼다. 미라의 발이 어둠 속으로 들어가기 직전, 브람이 옆쪽 벽의 틈을 발견했다.
“문이 있어!”
그가 발로 벽을 밀었다.
숨겨져 있던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의 몸이 안쪽으로 굴러 들어갔다. 우리도 차례로 그 방 안으로 몸을 던졌다.
문을 닫자 움직이는 바닥의 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브람은 바닥에 누운 채 숨을 몰아쉬었다.
미라가 그의 옆에 앉았다.
“고마워.”
“다음에는 네가 나를 구해.”
“좋아.”
“방금 약속한 거다.”
미라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방 안에는 또 다른 문이 있었다.
그 문 너머로 좁은 통로가 이어졌다. 우리는 움직이는 바닥을 피해 안쪽으로 들어갔다.
두 걸음을 지나자 북쪽 벽에 금속 손잡이가 보였다.
미라가 다가가 손잡이와 벽 사이의 틈을 살폈다.
“마법은 아니야.”
“확실해?”
엘리안이 물었다.
“적어도 내가 느낄 수 있는 마력은 없어.”
브람이 손잡이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움직이긴 하는데.”
가레스가 그의 손을 막았다.
“무엇과 연결되어 있는지 몰라.”
“그래서 움직여보려는 거야.”
“동굴이 무너질 수도 있어.”
브람은 움직이는 바닥 쪽을 가리켰다.
“아니면 저걸 멈출 수도 있지.”
모두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나는 귀를 기울였다.
벽 너머에서 여전히 기계적인 마찰음이 이어지고 있었다.
“내려.”
내가 말했다.
가레스는 반대하지 않았지만 손잡이에서 조금 떨어졌다. 브람은 양손으로 손잡이를 잡아 아래로 당겼다.
철컥.
벽 안쪽에서 여러 개의 금속 부품이 맞물리는 소리가 났다.
잠시 뒤 동굴을 울리던 마찰음이 멈췄다.
바닥의 진동도 사라졌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방 밖으로 나갔다.
조금 전까지 흘러가던 돌판이 멈춰 있었다.
미라는 바닥에 엎드려 돌 사이의 틈을 들여다보았다.
“밑에 바퀴 같은 게 있어.”
“톱니바퀴?”
브람이 물었다.
“그런 것 같아. 그런데 돌을 어떻게 계속 움직였지?”
“마법이 아니라고 했잖아.”
“그래서 이상한 거야.”
미라는 손가락을 틈 안으로 넣으려 했다.
가레스가 그녀의 뒷덜미를 잡아 일으켰다.
“다시 움직이기 전에 손을 빼.”
“조금만 보면 구조를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손가락이 남아 있어야 다음에도 조사할 수 있다.”
미라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물러났다.
멈춘 바닥 너머에는 작은 궤가 놓여 있었다.
브람이 함정을 확인하고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청동으로 만든 열쇠 하나가 들어 있었다.
열쇠의 머리에는 원과 여러 개의 직선이 교차하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배낭에서 노인이 준 두루마리를 꺼내 봉인을 확인했다.
밀랍에 찍힌 문양과 완전히 같지는 않았지만 어딘가 닮아 있었다.
“같은 사람이 만든 걸까?”
내가 묻자 미라가 두 문양을 비교했다.
“같은 문자 체계일 수도 있어. 아니면 서로 연관된 집단의 표식이거나.”
“이걸로 무엇을 열 수 있지?”
브람이 청동 열쇠를 들어 올렸다.
“문을 찾으면 알겠지.”
가레스가 대답했다.
브람이 그를 바라보았다.
“가끔은 나보다 더 쓸모없는 대답을 하는군.”
동굴 깊숙한 곳에서 우리는 한 노인을 만났다.
소르피갈 지하에서 만난 노인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길게 자란 머리카락과 수염을 전혀 다듬지 않았고, 낡은 로브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얼룩이 가득했다. 허리에는 작은 병과 두루마리, 마른 짐승의 발 같은 것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노인은 우리를 보자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왔다! 여섯이 왔어!”
목소리가 동굴 전체에 울렸다.
실렌이 활을 들어 그를 겨눴다.
“누구지?”
“나는 나다!”
노인이 두 팔을 벌렸다.
“남들은 나를 미쳤다고 부르지. 내가 미친 것인지,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이 미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브람이 내게 속삭였다.
“남들이 맞는 것 같은데.”
노인이 갑자기 우리를 한 명씩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기사, 팔라딘, 궁수, 도적, 성직자, 마법사! 모양은 갖추었군. 그러나 모양만으로는 부족하지!”
그의 손가락이 마지막으로 나를 향했다.
“열세 번 마주하고 열세 번 이겨라!”
“무엇과 싸우라는 거죠?”
내가 물었다.
“이미 안에 있다!”
“왜 싸워야 합니까?”
“밖에 나가서 죽지 않으려면!”
“우리가 거절하면요?”
노인의 웃음이 멎었다.
“그러면 너희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도 거기서 끝나는 것이지.”
가레스가 앞으로 나섰다.
“사람을 시험한다며 괴물에게 던지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나?”
“옳은 일!”
노인이 가레스를 가리켰다.
“그것도 시험해야지! 죽음 앞에서도 옳은 일을 지킬 수 있는지!”
가레스의 얼굴이 굳었다.
나는 그의 앞을 막았다.
“열세 번 이기면 무엇을 주죠?”
노인은 다시 웃었다.
“상을 주마!”
“무슨 상입니까?”
“받기 전에는 상이 아니지!”
그 말을 끝으로 노인의 몸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미라가 곧바로 그가 서 있던 자리로 달려갔다.
바닥과 벽을 조사했지만 비밀 통로는 보이지 않았다.
“순간이동이야.”
그녀가 말했다.
“공간이 아주 잠깐 접혔어.”
브람이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지?”
“나도 아직 몰라.”
실렌이 활을 내렸다.
“그래도 적이 열셋 있다는 건 알았네.”
“열세 명이 아니라 열세 무리겠지.”
가레스가 말했다.
그의 예상은 옳았다.
첫 번째 방에서는 무장한 병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누구인지, 왜 이 동굴에 있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문을 여는 순간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두 번째 방에는 불을 뿜는 거대한 딱정벌레들이 있었다.
세 번째 방에서는 반인반마의 전사들이 활을 쏘았다.
한 무리를 쓰러뜨리고 나면 다음 적은 더 강했다.
우리는 첫날 세 번째 전투를 마친 뒤 철수했다.
적을 모두 쓰러뜨린 것도 아니었다. 더 싸우면 살아서 소르피갈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 내가 후퇴를 명령했다.
가레스는 반대했다.
“아직 움직일 수 있어.”
“미라는 마력이 거의 없어. 엘리안도 치료를 두 번 이상 쓰기 어렵고.”
“내가 앞을 막으면 돼.”
“네 방패도 곧 부서져.”
“여기서 돌아가면 쓰러뜨린 적들이 다시 나타날 수도 있어.”
“그래도 돌아가.”
가레스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다시 오면 같은 길을 처음부터 싸워야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계속 가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도박이었다.
“이건 명령이야.”
내가 말했다.
가레스의 표정이 굳었다.
잠시 후 그는 검을 내렸다.
“알겠다.”
우리는 동굴을 빠져나와 소르피갈로 돌아갔다.
그날 밤, 가레스는 내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여관 식당에서 그가 먼저 말을 걸었다.
“어제는 내가 틀렸었다.”
가레스는 내 앞에 앉았지만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계속 싸웠다면 누군가는 죽었을 거야.”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가 말을 잇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넌 너무 늦게 철수를 결정했어.”
이번에는 내가 그를 바라보았다.
“세 번째 전투 전에 돌아갔어야 했다. 미라의 마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걸 알았을 텐데.”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어.”
“나도 그랬다.”
가레스가 말했다.
“그래서 네가 나보다 먼저 판단해야 해.”
그 말은 비난이 아니었다.
대장에게 요구하는 책임이었다.
“다음에는 더 빨리 결정할게.”
“그러면 나는 네 결정을 따르겠다.”
우리는 서로 손을 내밀거나 화해의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럴 필요는 없었다.
두 번째 원정에서는 싸우는 방식을 바꾸었다.
실렌은 적의 수와 위치를 먼저 파악했다. 브람은 방의 다른 출입구와 숨은 통로를 찾았다. 미라는 약한 적에게 공격 주문을 쓰지 않고 결정적인 순간을 위해 마력을 아꼈다.
엘리안은 모든 상처를 완전히 치료하려 하지 않았다.
“걸을 수 있고 무기를 들 수 있으면 충분해.”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가장 많이 다친 사람이 자신일 때는 치료를 미뤘다.
가레스와 나는 앞줄에서 역할을 나눴다.
그는 적의 공격을 받아냈고 나는 빈틈을 노렸다. 한 사람이 밀리면 다른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브람은 적의 뒤를 노렸고, 위험해진 미라와 엘리안을 보호했다.
우리는 조금씩 더 깊이 들어갔다.
그러나 오우거가 기다리는 방에서 또다시 막혔다.
놈들이 휘두른 몽둥이에 가레스의 방패가 갈라졌다. 나는 옆구리를 맞고 벽까지 날아갔다.
시야가 흐려졌다.
멀리서 엘리안의 목소리가 들렸다.
브람이 내 팔을 붙잡았다.
“루나, 일어나!”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때 가레스가 오우거 앞에 혼자 섰다.
금이 간 방패와 검 하나만 든 채였다.
“실렌!”
그가 외쳤다.
실렌의 화살이 오우거의 눈에 박혔다.
놈이 고개를 젖히는 순간 미라가 마지막 보석을 깨뜨렸다.
눈부신 번개가 방 안을 가로질렀다.
오우거가 쓰러졌다.
가레스도 그 옆에 무릎을 꿇었다.
우리는 그날 더 나아가지 않았다.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열세 번의 시련을 끝내기까지 여러 차례 소르피갈과 동굴을 오가야 했다.
좋은 무기와 갑옷을 얻기도 했고, 저주받은 장비를 집어 신전에서 비싼 값을 치르고 파괴하기도 했다.
싸움에서 이기고도 독에 중독되어 쓰러질 뻔했다.
식량이 떨어져 배고픈 채 돌아온 날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를 알게 되었다.
가레스는 누구보다 원칙을 중시했지만 동료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자존심부터 버렸다.
실렌은 말이 적었지만 파티의 모든 움직임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화살은 언제나 가장 위험한 적에게 먼저 날아갔다.
브람은 입으로는 자신만 살면 된다고 말했지만, 누군가 넘어질 때마다 가장 먼저 손을 뻗었다.
엘리안은 상처 입은 괴물에게조차 고통을 줄이는 기도를 올렸다.
미라는 위험한 장치를 보면 눈빛부터 달라졌지만, 동료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면 물러날 줄도 배웠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목숨이 내 판단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마지막 열세 번째 방 앞에서 우리는 잠시 멈췄다.
문 너머에서는 무거운 발소리가 들렸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돌아가도 돼.”
내가 말했다.
브람이 나를 바라보았다.
“여기까지 와서?”
“오늘 돌아가면 다음에는 더 준비해서 올 수 있어.”
가레스가 방패를 들어 보였다.
새로 마련한 방패에는 아직 큰 흠집이 없었다.
“나는 준비됐다.”
실렌이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나도.”
엘리안은 성표를 쥐었다.
“필요한 기도는 모두 준비했어.”
미라는 보석 주머니를 흔들었다.
“이번에는 아끼지 않을 거야.”
브람이 단검을 뽑았다.
“내 의견은 항상 다수결에서 중요하지 않더군.”
나는 문을 바라보았다.
두려웠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두려움이 우리를 물러나게 해야 한다는 신호인지, 단지 마지막 한 걸음을 앞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인지 구분할 수 있었다.
“들어간다.”
브람이 문을 열었다.
전투가 어떻게 끝났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괴물의 고함과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
엘리안의 기도.
미라의 주문이 터질 때마다 번쩍이던 빛.
실렌의 화살이 내 얼굴 옆을 스쳐 지나가는 감각.
브람이 적의 발목 사이로 몸을 던지는 모습.
가레스의 방패가 마침내 둘로 갈라지는 소리.
나는 검을 놓치고도 다시 주워 들었다.
가레스가 쓰러졌을 때 그의 앞을 막았다.
내가 무릎을 꿇었을 때 브람과 엘리안이 나를 끌어냈다.
미라가 마지막 주문을 외쳤다.
불길이 방을 가득 채웠다.
연기 속에서 실렌의 마지막 화살이 날아갔다.
거대한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 뒤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우리 여섯 명의 숨소리만 남았다.
“끝난 건가?”
브람이 물었다.
“열셋.”
동굴 어딘가에서 웃음소리가 울렸다.
“열세 번 마주하고, 열세 번 이겼다!”
미친 마법사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는 마치 즐거운 공연을 본 사람처럼 손뼉을 쳤다.
가레스가 부서진 방패를 내려놓았다.
“이 모든 것이 당신에게는 구경거리였나?”
“구경거리?”
노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다. 증명이었지!”
“무엇을 증명한 겁니까?”
내가 물었다.
마법사는 우리를 차례로 바라보았다.
“너희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
그는 허공에서 묵직한 자루를 꺼내 바닥에 던졌다. 자루가 터지며 수많은 금화가 쏟아졌다.
그 사이에는 청동 열쇠 하나가 놓여 있었다.
동굴 입구의 장치를 멈추고 얻은 것과 같은 열쇠였다.
브람이 두 열쇠를 나란히 놓았다.
“같은 열쇠가 왜 두 개나 있지?”
“문은 하나라고 누가 말했나?”
마법사가 대답했다.
“어느 문을 여는 겁니까?”
“잠긴 문!”
“그 문이 어디 있죠?”
“열쇠를 찾아낸 자라면 문도 찾아내야지!”
노인은 다시 웃으며 사라졌다.
미라는 그의 흔적을 조사했지만 이번에도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동굴의 마지막 구역에는 또 하나의 빛나는 문이 있었다.
소르피갈 지하에서 본 것과 같은 이동문이었다.
표면 너머로 다른 지하 공간과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희미하게 보였다.
미라가 가까이 다가갔다.
“저 너머에는 다른 장소가 있어.”
“어딘지는?”
“알 수 없어.”
브람이 말했다.
“미친 마법사의 말대로라면 들어가서 살아남는 것도 증명이겠지.”
가레스는 내 결정을 기다렸다.
나는 한동안 빛나는 문을 바라보았다.
한 걸음이면 전혀 다른 장소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이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우리에게는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나는 배낭 속 양피지를 만졌다.
“지금은 들어가지 않을게.”
미라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반대하지 않았다.
“에를리퀸을 찾는 게 먼저야.”
나는 이동문의 위치를 지도에 표시했다.
언젠가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가 어느 문을 열고 어느 세계로 건너가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동굴 밖으로 나오자 해가 지고 있었다.
숲 사이로 붉은 빛이 들어왔다.
우리는 피와 먼지로 뒤덮여 있었고, 가레스의 방패는 부서졌으며, 미라의 보석 주머니는 텅 비어 있었다.
그러나 모두 살아 있었다.
브람이 청동 열쇠 두 개를 흔들었다.
“목숨값치고는 작은데.”
실렌이 금화 자루를 바라보았다.
“저것도 있어.”
“그러면 조금 낫군.”
엘리안은 숲 너머 서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제 정말 에를리퀸으로 가는 거지?”
나는 지도를 펼쳤다.
소르피갈 주변에는 아직 확인하지 못한 길이 많았다. 그러나 더 이상 한곳에 머물 수는 없었다.
양피지를 맡은 뒤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
“내일 서쪽으로 간다.”
나는 지도 위에 새로운 선을 그었다.
소르피갈에서 에를리퀸으로 향하는 첫 번째 선이었다.
우리는 아직 알지 못했다.
두 개의 청동 열쇠보다, 미친 마법사의 금화보다, 열세 번의 승리보다 중요한 것이 우리 안에 생겼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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