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편 — 얼음공주의 수수께끼

돌 수호자들이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바닥이 울렸다. 사람의 모습을 본떠 만든 석상이었지만 움직임에는 인간다운 망설임이 없었다. 붉게 빛나는 눈은 오직 우리만을 향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환영 인사는 아닌 것 같군.”

가레스가 방패를 들었다.

첫 번째 수호자가 팔을 휘둘렀다.

나는 몸을 낮추며 공격을 피했다. 돌로 된 주먹이 뒤쪽 바위를 때리자 표면이 산산이 부서졌다. 저 공격을 정면으로 받으면 방패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가레스가 수호자의 옆구리를 검으로 내리쳤다.

금속음과 함께 불꽃이 튀었다.

그러나 돌 표면에는 가느다란 흠집만 생겼다.

“검이 통하지 않는다!”

그가 외쳤다.

브람의 단검과 실렌의 화살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공격해도 단단한 몸을 뚫지 못했다.

그때 미라가 말했다.

“평범한 무기는 안 돼! 마력이 깃든 무기를 사용해!”

우리는 그동안 전투에서 얻은 장비 가운데 일부가 이상할 정도로 가볍고 날카롭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미라는 그것들을 단순히 제작 기술이 뛰어난 무기가 아니라, 미약하게나마 마력이 깃든 물건이라고 추측했다.

나는 허리에 찬 검을 내려다보았다.

소르피갈을 떠날 때 들고 있던 검은 이미 부러졌다. 지금 사용하는 것은 미친 마법사의 동굴에서 발견한 검이었다.

나는 다시 수호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돌팔이 방패를 내리찍는 순간 옆으로 몸을 틀어 무릎 뒤쪽을 베었다. 푸른 섬광과 함께 검날이 돌 속으로 파고들었다.

수호자의 다리가 무너졌다.

“효과가 있어!”

실렌은 화살촉에 미라가 건네준 마법의 기름을 발랐다. 그녀의 화살이 수호자의 붉은 눈에 꽂히자 머리 전체에 균열이 번졌다.

가레스와 내가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수호자의 몸이 산산이 부서졌다.

그러나 아직 두 구가 남아 있었다.

미라는 돌 조각 사이에 남은 마력의 흐름을 살펴보더니 지팡이를 땅에 내리쳤다. 번개가 갈라진 틈을 따라 퍼졌고, 두 번째 수호자가 경련하듯 흔들렸다.

브람이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수호자의 등으로 올라가 목 뒤에 단검을 깊숙이 박았다. 검은 연기가 솟아올랐고, 거대한 몸이 앞으로 쓰러졌다.

마지막 수호자는 우리가 싸우는 동안에도 일정한 속도로 다가왔다.

“물러서!”

엘리안이 성표를 들어 올렸다.

눈부신 빛이 수호자를 뒤덮었다. 석상은 잠시 멈췄지만 완전히 굳지는 않았다. 가레스가 방패로 팔을 막아내는 동안 나는 벌어진 가슴의 틈에 검을 밀어 넣었다.

돌 안쪽에서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붉은 눈이 꺼졌다.

마지막 수호자가 무너진 뒤에야 대지는 다시 조용해졌다.

“이 지역은 입구부터 지나치게 험하군요.”

엘리안이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피로가 역력했다.

나는 부서진 석상의 잔해를 살펴보았다.

돌 안쪽에는 피도, 살도 없었다. 대신 가슴 중앙에 작은 금속 조각이 박혀 있었다. 표면에는 에를리퀸 지하에서 본 것과 비슷한 가느다란 선들이 새겨져 있었다.

“이것도 마법이 아닌 건가?”

내가 미라에게 물었다.

그녀는 금속 조각을 손에 들고 한참 들여다보았다.

“마력이 조금 남아 있긴 해. 하지만 이게 석상을 움직인 힘인지는 모르겠어.”

“가져갈까?”

“아니.”

미라는 금속 조각을 내려놓았다.

“무엇인지 모르는 물건이 가방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건 보고 싶지 않아.”

그 의견에는 모두 동의했다.


B-2의 황야는 길을 찾기 어려운 곳이었다.

바위와 절벽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길처럼 보이는 통로가 갑자기 막다른 곳으로 끝났다. 바닥에는 자연적으로 생겼다고 보기 힘든 원형 무늬가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브람이 그중 하나를 밟는 순간, 그의 몸이 빛에 휩싸였다.

“브람!”

내가 손을 뻗었지만 늦었다.

그는 눈앞에서 사라졌다.

잠시 후 미라와 엘리안도 차례로 사라졌다. 무늬가 넓게 빛나며 남아 있던 우리까지 집어삼켰다.

시야가 뒤집혔다.

발밑의 땅이 사라졌다가 다시 생겨났다.

다음 순간 우리는 전혀 다른 곳에 서 있었다.

주변에는 우리가 지나온 흔적도, 지도에 표시한 바위도 없었다.

브람은 조금 떨어진 곳에 엎어져 있었다.

“살아 있어?”

내가 달려가자 그가 얼굴을 들었다.

“아마도. 하지만 내 위장이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어.”

“순간이동이에요.”

엘리안이 주변을 살폈다.

“누군가 길목마다 이동 마법을 설치해놓은 것 같습니다.”

미라는 원형 무늬를 찾았지만, 방금 이동한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일방통행이야. 밟은 곳으로 돌아갈 수 없어.”

나는 지도를 펼쳤다.

현재 위치를 알 수 없으니 기존 지도와 연결할 수도 없었다. 우리는 새로운 종이에 주변 지형부터 다시 그려야 했다.

B-2에서는 길을 잃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이 일어났다.

길 자체가 우리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있었다.


황야를 헤매는 동안 우리는 몇 차례 적을 발견했다.

멀리 언덕 위에는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가 홀로 서 있었다. 그의 갑옷은 햇빛을 반사하지 않았고, 투구의 틈에서는 붉은 눈빛이 새어 나왔다.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방향을 바꿀 때마다 투구도 우리 쪽으로 돌아갔다.

가레스가 한동안 그를 바라보았다.

“싸움을 걸어오고 있어.”

“받지 않는다.”

내가 말했다.

“돌 수호자들과 싸운 것만으로도 충분해.”

남쪽에서는 죽은 자들의 냄새가 바람을 타고 왔다. 낮은 언덕 너머로 마른 로브를 걸친 형체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엘리안의 얼굴이 굳었다.

“리치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곳도 피했다.

이 지역에는 지금의 우리가 상대할 수 없는 존재들이 너무 많았다. 강함을 증명하기 위해 모든 적에게 달려드는 것은 용기가 아니었다.

살아서 돌아가기 위해 싸울 상대와 피할 상대를 구분하는 것.

그것도 모험가가 배워야 할 기술이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 공기가 갑자기 차가워졌다.

아침부터 따뜻했던 황야에 하얀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다. 바위 표면이 얼어붙고 숨을 내쉴 때마다 입김이 피어올랐다.

조금 더 나아가자 작은 얼음 정원이 나타났다.

한가운데에는 수정처럼 투명한 왕좌가 놓여 있었다.

왕좌 위에는 한 여인이 앉아 있었다.

머리카락과 피부가 모두 눈처럼 희었고, 몸을 감싼 드레스는 얇은 얼음 조각으로 만든 것 같았다. 아름다운 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우리가 다가가자 그녀가 눈을 떴다.

푸른 눈동자 안에서 얼음 결정이 피어났다.

“여행자들이여.”

그녀의 목소리는 바람보다 차가웠다.

“나의 질문에 답할 자는 누구인가?”

나는 동료들을 돌아본 뒤 앞으로 나섰다.

“제가 답하겠습니다.”

그녀는 왕좌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수수께끼를 말했다.

“세계를 정복하고, 꿈을 만들어내며,
모든 힘 가운데 가장 위대하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세계의 정복자.

꿈을 만드는 것.

가장 위대하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힘.

무력이라면 손에 잡히는 검과 군대가 있다.

마법이라면 주문으로 불러낼 수 있다.

시간은 세계를 정복하지만 꿈을 만들지는 않는다.

나는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가레스는 말없이 기다렸다. 실렌은 답을 알고 있는 듯했지만 내 선택에 맡겼다. 엘리안의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나는 얼음공주를 바라보았다.

“사랑.”

주변의 바람이 멎었다.

얼음공주의 얼굴에 아주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옳다.”

그녀가 손을 펼치자 얼음 왕좌 아래에서 빛나는 물체가 떠올랐다.

투명한 결정으로 만든 작은 열쇠였다. 빛을 받으면 여러 색으로 반짝였지만, 그 중심부에는 검은 점이 박혀 있었다.

얼음공주는 그것을 내게 건넸다.

“다이아몬드 열쇠를 가져가라.”

열쇠를 받는 순간 손바닥이 얼어붙는 것처럼 차가워졌다. 그러나 고통은 오래가지 않았다.

얼음공주는 다시 눈을 감았다.

주변의 추위가 조금씩 사라졌다.

“이게 어디에 쓰이는지는 안 알려주나?”

브람이 물었다.

대답은 없었다.

우리는 열쇠를 천으로 감싸 배낭 안에 넣었다.


정원을 떠난 뒤 나는 무언가 마음에 걸려 걸음을 멈췄다.

“다시 가보자.”

“왜?”

실렌이 물었다.

“공주는 답을 맞히면 열쇠를 준다고 말하지 않았어. 질문에 답할 자를 찾았을 뿐이야.”

브람이 고개를 갸웃했다.

“한 번 더 물어보면 한 번 더 줄지도 모른다는 뜻이야?”

“확인해볼 가치는 있어.”

우리가 정원으로 돌아가자 모든 것이 처음과 똑같았다.

얼음공주는 다시 왕좌에 앉아 있었고, 우리가 조금 전 만났다는 흔적조차 없었다.

그녀가 눈을 떴다.

“여행자들이여. 나의 질문에 답할 자는 누구인가?”

수수께끼도 같았다.

“세계를 정복하고, 꿈을 만들어내며,
모든 힘 가운데 가장 위대하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이번에도 내가 답했다.

“사랑.”

얼음공주는 다시 미소 지었다.

“옳다.”

이번에는 청동으로 만든 열쇠가 왕좌 아래에서 떠올랐다.

모양은 다이아몬드 열쇠와 같았지만 재질은 전혀 달랐다.

“청동 열쇠를 가져가라.”

열쇠를 받아든 뒤에도 공주는 우리가 전에 정답을 맞혔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혹은 기억하면서도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미라가 정원을 벗어난 뒤 말했다.

“그녀는 사람이 아닐지도 몰라.”

“얼음 정령?”

“그것도 모르겠어. 정해진 질문과 답을 영원히 반복하도록 만들어진 존재일 수도 있어.”

나는 두 열쇠를 나란히 살펴보았다.

다이아몬드와 청동.

같은 답에서 나온 두 개의 열쇠.

어디에 쓰일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언젠가 우리 앞을 막은 문 가운데 하나를 열어줄 것이다.


브람은 세 번째 방문을 제안했다.

“이번에는 틀린 답을 해보자.”

“위험할 수도 있어.”

엘리안이 말했다.

“두 번이나 보상을 받았잖아. 틀리면 무엇을 하는지도 알아야지.”

브람의 주장은 무모했지만 일리가 있었다. B-2의 일부 지역은 절벽과 바위에 막혀 접근할 수 없었다. 얼음공주의 정원이 이 지역의 길을 바꾸는 장치라면, 오답 또한 하나의 통로가 될 수 있었다.

우리는 세 번째로 정원에 들어갔다.

모든 것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있었다.

얼음공주가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번에는 브람이 앞으로 나섰다.

“정답은…… 금화.”

얼음공주의 미소가 사라졌다.

“그릇된 답이다.”

그녀의 눈에서 푸른빛이 터졌다.

세상이 얼음처럼 갈라졌다.

발밑의 땅이 사라졌고, 몸이 허공으로 끌려갔다.


우리는 또다시 B-2의 낯선 곳에 떨어졌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주변 지형이 완전히 달랐다. 길고 좁은 통로 양쪽으로 검은 숲이 이어졌고, 나무들은 너무 촘촘하게 자라 안쪽을 볼 수 없었다.

뒤로 돌아가려 했지만 투명한 벽이 길을 막았다.

“공주가 우리를 일부러 이곳으로 보낸 거야.”

미라가 말했다.

“벌을 준 건지, 길을 열어준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통로를 따라 움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지하 입구가 나타났다. 입구 위에는 날개를 펼친 까마귀와 검을 든 전사들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다.

그 앞에는 오래된 석판이 세워져 있었다.

전사들의 요새.

가레스가 입구를 바라보았다.

“이곳의 전사들이 아직 살아 있을까?”

그때 지하 깊은 곳에서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한 번.

두 번.

마치 수많은 병사들이 동시에 검을 뽑는 소리였다.

입구 양쪽의 횃불이 저절로 타올랐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도전자들이 왔다.”

나는 다이아몬드 열쇠와 청동 열쇠가 든 가방을 확인한 뒤 검을 뽑았다.

우리가 얼음공주의 수수께끼를 틀린 대가로 이곳에 떨어진 것인지, 아니면 정답만을 고집하는 자는 결코 이곳을 찾지 못하도록 만들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새로운 던전이 우리 앞에 있었다.

우리는 전사들의 요새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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