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편 — 에를리퀸의 숨은 마법사
B-1에 들어선 뒤부터 길은 눈에 띄게 험해졌다.
이곳의 숲은 C-1의 숲과 달랐다. 나무 사이로 햇빛이 거의 들지 않았고, 얽힌 뿌리와 낮은 관목이 길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검푸른 잎들이 서로 비벼지며 속삭이는 듯한 소리를 냈다.
나는 방패를 든 채 일행의 가장 앞에서 걸었다. 그동안 몇 번이나 펼쳐 보았는지, 지도 가장자리는 이미 손때와 흙으로 얼룩져 있었다.
“방향은 맞아.”
뒤에서 미라가 말했다. 작은 체구 때문에 수풀에 거의 파묻힐 지경이었지만, 그녀의 손에는 늘 그렇듯 작은 수정구가 들려 있었다.
“계속 이 방향으로 가면 에를리퀸이 나와야 해.”
“‘나와야 한다’라.”
브람이 삐딱하게 웃었다.
“그 말은 보통 뭔가가 잘못되기 직전에 하는 말이지.”
“불평할 힘이 남아 있다면 발이나 더 빨리 움직여.”
실렌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꾸했다. 그녀는 활에 화살을 걸지는 않았지만, 언제라도 꺼낼 수 있도록 손을 가까이 두고 있었다.
나는 두 사람의 말을 흘려들으며 앞을 살폈다.
소르피갈의 지하에서 만난 노인이 맡긴 양피지 두루마리는 아직 내 배낭 안에 있었다. 몇 번의 전투와 긴 이동을 거쳤지만, 봉인은 손상되지 않았다. 우리는 그것을 읽어보려 하지 않았다. 단순히 마법의 봉인이 두려웠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리에게 처음으로 주어진 임무였다.
그것만으로도 지켜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숲이 조금씩 옅어지더니, 나무 사이로 회색빛 성벽이 나타났다. 거대한 요새처럼 웅장하지는 않았지만, 외부의 황야와 숲을 막아내기에는 충분히 높고 단단해 보였다.
성문 위에는 오래된 글씨로 이름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ERLIQUIN.
“에를리퀸.”
내가 그 이름을 소리 내어 읽었다.
가레스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도착했군.”
기뻐해야 할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성문을 바라보며 안도감보다 긴장을 먼저 느꼈다.
너무 조용했다.
성벽 바깥에는 순찰병도, 여행자도 보이지 않았다. 숲길을 오가는 상인도 없었다. 문은 열려 있었지만, 우리를 맞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어.”
실렌이 낮게 말했다.
그녀의 시선은 성벽 위를 훑고 있었다.
“보이지 않을 뿐이야.”
나는 검 손잡이에 손을 얹은 채 성문을 통과했다.
그러나 안쪽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것은 매복도, 괴물도 아니었다.
그저 고요한 거리였다.
소르피갈이 사람과 소음으로 가득한 도시였다면, 에를리퀸은 버려진 미로처럼 느껴졌다.
낮은 석조 건물들이 좁은 통로를 따라 늘어서 있었고, 창문 대부분은 굳게 닫혀 있었다. 거리를 지나는 주민들은 우리와 눈이 마주치기 전에 고개를 돌렸다. 외지인을 경계하는 것인지, 아니면 도시 전체가 말할 수 없는 비밀을 품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도시라고 하기엔 사람이 너무 없군요.”
엘리안이 말했다.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숨어 있는 거겠지.”
브람은 벽과 문을 유심히 살폈다. 도둑으로 살아온 그의 눈에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흔적이 보이는 모양이었다.
“이 도시에는 막힌 길이 많아. 진짜 벽도 있고, 벽처럼 보이기만 하는 것도 있을 거야.”
그의 말대로였다.
도시를 돌아다닐수록 구조가 이상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길은 갑자기 벽 앞에서 끊겼고, 분명 건물의 일부여야 할 공간이 지도상으로는 텅 비어 있었다. 어떤 통로는 눈앞에 아무것도 없는데도 보이지 않는 장벽에 막혀 들어갈 수 없었다.
미라가 손을 뻗었다.
허공에서 그녀의 손끝이 무언가에 닿았다.
“마법 장벽이야.”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강력한 건 아니지만, 우리 수준으로는 없애기 어려워. 사람을 해치기 위한 것보다는 길을 감추기 위한 마법 같아.”
“도시 전체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군.”
가레스가 말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가르라는 마법사가 이런 도시에서 산다는 사실이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는 곧바로 그를 찾아 나서고 싶었지만, 하루 동안의 여행으로 모두 지쳐 있었다. 무엇보다 낯선 도시에서 무턱대고 돌아다니는 것은 위험했다.
우선 여관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 여관은 도시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낡은 나무 간판이 바람에 흔들렸고, 안으로 들어가자 희미한 등불과 따뜻한 공기가 우리를 맞았다. 손님은 거의 없었다. 구석 자리에 망토를 뒤집어쓴 남자가 앉아 있었지만, 우리가 들어오는 순간 술잔만 바라보기 시작했다.
여관 주인은 우리를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묵고 갈 텐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섯 명입니다.”
“무기는 방 안에서 휘두르지 말고, 소란도 피우지 마시오.”
그는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왜 에를리퀸에 왔는지 묻지 않았다.
돈을 건네고 방을 배정받은 뒤에야 우리는 긴장을 조금 풀 수 있었다. 엘리안은 상처를 살폈고, 실렌은 젖은 활시위를 새것으로 갈았다. 브람은 장비를 풀어놓자마자 침대에 드러누웠다.
하지만 나는 쉬지 못했다.
창가에 앉아 배낭에서 양피지 두루마리를 꺼냈다.
촛불 아래에서 살펴보아도 겉면에는 수신인의 이름만 쓰여 있었다.
마법사 아가르에게. 에를리퀸.
그뿐이었다.
“여관 주인에게 물어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엘리안이 말했다.
“그가 대답해준다면.”
실렌의 목소리에는 기대가 없었다.
나는 두루마리를 다시 넣었다.
“우선 도시를 살펴보자. 아가르를 찾지 못하더라도, 그에 관한 소문 정도는 들을 수 있을 거야.”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에를리퀸의 거리를 하나씩 확인하기 시작했다.
장비를 파는 상점과 식량을 파는 가게, 사원과 훈련소, 주점이 있었다. 형태는 소르피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가격도, 사람들의 태도도 달랐다. 이곳의 상인들은 말수가 적었고, 우리가 아가르의 이름을 꺼내면 노골적으로 대화를 피했다.
주점에서는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브람이 주인에게 술값보다 많은 동전을 밀어주자, 그는 주변을 살핀 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법사를 찾고 있다면, 눈앞에 보이는 문만 믿지 마시오.”
“그게 무슨 뜻이지?”
내가 묻자 그는 빈 잔을 닦으며 시선을 피했다.
“에를리퀸에는 방보다 벽이 많고, 벽보다 비밀이 많소. 내가 해줄 말은 그것뿐이오.”
그 뒤로는 아무리 돈을 더 건네도 입을 열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거리로 나왔다.
브람이 투덜거렸다.
“돈을 받고 수수께끼나 파는군.”
“그래도 단서는 얻었잖아.”
미라가 말했다.
“눈앞에 보이는 문만 믿지 말라고 했어. 아가르의 집에는 평범한 입구가 없을지도 몰라.”
우리는 도시의 모든 골목을 돌았다.
지도는 서서히 채워졌지만, 빈 공간도 늘어갔다. 특히 여관 뒤편에는 이상할 정도로 닿을 수 없는 구역이 있었다. 바깥에서 보면 분명 작은 방 두어 개가 들어갈 만한 공간인데, 주변 어느 길에서도 들어갈 수 없었다.
나는 지도 위의 빈칸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여기야.”
가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같은 생각을 했다. 아가르가 숨어 있다면 이곳일 가능성이 높아.”
“하지만 입구가 없어.”
실렌이 말했다.
그때 브람이 천천히 여관 쪽을 돌아보았다.
“밖에는 없지.”
그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러니 안에 있겠군.”
우리는 다시 여관으로 들어갔다.
여관 주인은 전날과 똑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묵고 갈 텐가?”
그가 물었다.
“아니.”
내가 대답했다.
그 순간 그의 눈빛이 아주 미세하게 달라졌다.
“그렇다면 나가시오.”
우리는 돌아서지 않았다.
브람이 자연스럽게 일행의 뒤로 물러나 벽을 살폈다. 여관 뒤쪽 벽에는 장식도, 문고리도 없었다. 보기에는 완전한 돌벽이었다.
그러나 브람은 바닥에 쌓인 먼지를 내려다보았다.
“사람이 드나든 흔적이 있어.”
그가 속삭였다.
“벽 앞의 먼지만 얇아.”
미라가 벽에 손바닥을 댔다. 잠시 눈을 감고 있던 그녀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이건 벽이 아니야.”
가레스가 앞으로 나섰지만, 나는 손을 들어 그를 멈췄다.
그리고 직접 벽을 향해 걸었다.
충돌에 대비해 몸에 힘을 주었지만, 돌벽은 내 몸에 닿지 않았다. 차가운 물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얼굴을 스치더니, 나는 벽 반대편의 어두운 통로에 서 있었다.
뒤이어 동료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브람이 통과하며 웃음을 흘렸다.
“도시 이름을 지도에 적는 것보다 벽을 의심하는 게 더 중요하겠어.”
통로는 길지 않았다.
우리는 남쪽으로 몇 걸음 내려간 뒤, 작은 방 앞에 도착했다. 문도 없었지만 안쪽에서는 푸른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긴 로브와 희게 센 머리, 깊게 팬 눈가. 그는 책상 위에 펼친 문서를 읽고 있었다. 방 안에는 수많은 병과 두루마리, 정체를 알 수 없는 금속 기구들이 가득했다. 천장 가까이에는 작은 빛의 구체들이 떠다니며 푸른 불빛을 내고 있었다.
그는 우리가 들어왔는데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늦었군.”
첫마디였다.
나는 검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당신이 아가르인가?”
“그 이름을 알고 이곳까지 들어왔다면, 굳이 확인할 필요는 없겠지.”
그제야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은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깊었다. 단순히 오래 산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너무 많은 것을 보고, 그중 대부분을 말하지 않기로 한 사람의 눈이었다.
나는 배낭에서 양피지 두루마리를 꺼냈다.
“소르피갈 지하에서 한 노인을 만났습니다. 이것을 당신에게 전해달라고 했어요.”
아가르의 시선이 두루마리의 봉인에 머물렀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에 처음으로 변화가 일어났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분명 놀라고 있었다.
“이리 주게.”
나는 두루마리를 건넸다.
그가 손가락으로 봉인을 훑자 밀랍이 불에 닿은 것처럼 스스로 녹아내렸다. 아가르는 안의 내용을 빠르게 읽었다. 우리는 조용히 그의 표정을 살폈지만, 놀라움은 곧 사라지고 다시 단단한 침묵만 남았다.
“노인은 살아 있던가?”
“우리가 떠날 때까지는 그랬습니다.”
“그렇군.”
아가르는 두루마리를 천천히 말았다.
“자네들은 그 안의 내용을 보았나?”
“아니요.”
“보려고 시도하지도 않았고?”
“우리에게 맡겨진 것은 읽는 일이 아니라 전달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나를 잠시 바라보았다.
시험하는 눈빛이었다.
이윽고 아가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첫걸음은 제대로 내디뎠군.”
그가 손을 들자 푸른 빛줄기가 우리 여섯을 차례로 스쳐 지나갔다. 상처가 치유된 것도, 힘이 솟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머릿속 깊은 곳에 무언가가 새겨지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겪은 싸움과 고통이 하나의 경험으로 정리되어 몸에 스며드는 듯했다.
미라가 놀란 얼굴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건…….”
“자네들이 받을 몫이다.”
아가르가 말했다.
그가 우리에게 준 것은 금화가 아니었다. 그러나 여행 중 얻은 어떤 보상보다 값진 것이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문턱 하나를 넘어선 듯, 나는 전보다 분명한 힘이 몸 안에 자리 잡았음을 느꼈다.
하지만 아가르는 두루마리를 보관하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다시 내게 내밀었다.
“이제 이것을 더스크로 가져가라.”
나는 선뜻 받지 못했다.
“더스크?”
“그곳에 텔고란이라는 자가 있다. 나의 제자였고, 지금은 나보다 이 두루마리의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자지.”
“왜 직접 보내지 않는 겁니까?”
가레스가 물었다.
아가르의 눈이 그에게 향했다.
“내가 움직이면 지켜보는 자들도 움직이기 때문이다.”
“누가 지켜보고 있죠?”
이번에는 실렌이 물었다.
아가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방 안을 떠다니던 푸른 빛들이 일제히 흔들렸다. 바람은 없었는데도 촛불이 꺼지기 직전처럼 떨렸다.
“VARN에는 지금 눈에 보이는 것보다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가 마침내 말했다.
“길에 나타나는 괴물도, 서로 단절된 도시도, 왕과 영주들이 성문을 걸어 잠근 것도 각각 다른 사건이 아니다. 아직은 조각만 보일 테지만, 계속 걷다 보면 하나의 그림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VARN.
나는 그 말을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의 이름이었다. 하지만 아가르는 그것을 고향이나 대륙의 이름처럼 발음하지 않았다. 마치 더 크고 낯선 무언가의 명칭을 말하는 것 같았다.
“텔고란을 만나면 답을 들을 수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답?”
아가르가 희미하게 웃었다.
“아니. 아마 더 많은 질문을 얻게 되겠지.”
그는 두루마리를 내 손에 올려놓았다.
봉인은 이미 풀렸지만, 안에 적힌 글자는 보이지 않았다. 펼쳐 보지 않았는데도 알 수 있었다. 양피지 안쪽에서 미세한 열과 진동이 느껴졌다. 아가르가 새로운 마법을 걸어놓은 듯했다.
“더스크는 이곳에서 가깝지 않다. 서두르는 것과 무모하게 움직이는 것을 혼동하지 마라. 살아서 도착하지 못한다면 두루마리를 지킨 의미도 없으니.”
“명심하겠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아가르는 더 이상 우리를 바라보지 않았다. 이미 대화가 끝났다는 듯 다시 책상 위의 문서로 시선을 내렸다.
“가라.”
푸른빛이 갑자기 강해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우리는 여관의 벽 앞에 서 있었다.
아가르의 방도, 숨겨진 통로도 보이지 않았다. 돌벽을 다시 통과하려 했지만 이번에는 차갑고 단단한 감촉만 돌아왔다.
브람이 주먹으로 벽을 가볍게 두드렸다.
“마법사들은 손님을 내보내는 방식도 참 무례하군.”
“그래도 보상은 받았잖아요.”
엘리안은 자신의 몸에 남은 마법의 흔적을 느끼려는 듯 눈을 감고 있었다.
미라는 벌써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아가르는 누군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고 했어. 그런데 그런 사람이 왜 우리 같은 초보 모험가들에게 중요한 물건을 맡겼을까?”
“눈에 띄지 않으니까.”
실렌이 답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나는 말없이 두루마리를 배낭에 넣었다.
소르피갈 지하에서 이 물건을 처음 받았을 때만 해도 단순한 심부름이라고 생각했다. 이름도 모르는 노인이 마법사에게 보내는 편지. 위험한 세상에서는 흔히 있을 법한 부탁이었다.
하지만 아가르는 그 안의 내용을 보고 놀랐다.
그는 VARN 전체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제 두루마리는 또 다른 사람을 향하고 있었다.
더스크의 텔고란.
여관 주인이 무심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묵고 갈 텐가?”
나는 잠시 동료들을 돌아보았다.
모두 지쳐 있었지만, 눈빛은 전과 달라져 있었다. 우리는 이제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 길을 떠도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아주 작은 조각일지라도, 이 세계를 뒤덮은 비밀 하나를 손에 쥐고 있었다.
“그래.”
내가 대답했다.
“오늘은 여기서 쉰다.”
에를리퀸을 떠나기 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훈련소에서 지금까지 쌓은 경험을 힘으로 다듬고, 식량과 장비를 보충해야 했다. 더스크까지 가는 길이 어떤 모습인지도 알아봐야 했다.
무엇보다 B-1의 황야조차 우리는 아직 제대로 알지 못했다.
밤이 깊어진 뒤에도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아가르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계속 걷다 보면 하나의 그림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나는 침대 곁에 세워둔 검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그 그림을 완성하게 될지, 아니면 그 안에 삼켜질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소르피갈에서 시작된 우리의 여행은 에를리퀸에 도착한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제야 비로소, 진짜 이야기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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