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 성벽 밖의 첫걸음

소르피갈을 떠나기 전, 우리는 가진 돈을 거의 모두 사용했다.

식량과 횃불, 화살, 붕대와 물주머니를 샀다. 가레스의 방패에는 새 가죽끈을 달았고, 내 검은 대장간에서 날을 세웠다. 브람은 자물쇠를 여는 도구 몇 개를 새로 장만했다.

미라는 보석을 사는 데 돈을 너무 많이 썼다.

“그 작은 돌멩이들이 식량보다 중요해?”

브람이 물었다.

“고위 주문을 쓰려면 필요해.”

“쓸 수는 있고?”

“아직은 못 써.”

브람이 나를 바라보았다.

“대장, 우리 돈을 회수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미라는 보석 주머니를 품속에 감췄다.

“언젠가 쓸 수 있어.”

“그 언젠가가 굶어 죽기 전이었으면 좋겠군.”

가레스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는 상점에서 가장 값싼 식량 꾸러미를 하나 더 사 자신의 배낭에 넣었다.

엘리안은 신전에서 약초와 해독제를 구했다.

“황야에 어떤 독초와 짐승이 있는지 모르니까.”

실렌은 필요한 화살보다 적게 샀다.

“그걸로 충분하겠어?”

내가 묻자 그녀가 짧게 대답했다.

“회수하면 돼.”

“괴물 몸에 박힌 것도?”

“살아남으면.”

그 말에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준비를 마친 우리는 도시의 출구 앞에 섰다.

성문 밖으로 넓은 들판이 보였다. 소르피갈 지하로 내려갈 때와는 달랐다. 계단 아래에는 돌아올 수 있는 길이 있었다. 하지만 황야는 어디까지 이어지는지도 알 수 없었다.

나는 배낭 안의 양피지를 확인했다.

에를리퀸의 마법사 아가르.

그 이름 말고는 목적지를 찾을 단서가 없었다.

성문 경비병에게 길을 물었지만 그는 서쪽을 가리킬 뿐이었다.

“계속 가다 보면 표지판이 나올 거요.”

“얼마나 가야 합니까?”

“살아 있으면 보게 되겠지.”

그는 농담을 한 것 같지 않았다.


성문을 벗어나자 바람의 냄새가 달라졌다.

도시 안에서는 돌과 연기, 사람과 짐승의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바깥 공기에는 풀과 흙, 멀리 있는 숲의 향기가 담겨 있었다.

처음 몇 걸음은 가벼웠다.

성벽과 망루가 등 뒤에 보이는 동안에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돌아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낮은 언덕을 넘자 소르피갈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순간부터 모든 방향이 낯설어졌다.

길은 하나가 아니었다. 풀이 짓밟힌 흔적이 여러 갈래로 갈라졌고, 어떤 길은 숲으로, 어떤 길은 낮은 구릉 너머로 이어졌다.

나는 지도를 꺼냈다.

“어느 방향으로 가지?”

가레스가 물었다.

“서쪽.”

“경비병 말을 믿나?”

브람이 물었다.

“적어도 동쪽보다는 나아.”

“훌륭한 판단이군.”

나는 그의 빈정거림을 무시하고 첫 번째 선을 그었다.

우리는 소르피갈이 있는 지역을 C-2라고 표시했다. 가로 방향에는 문자를, 세로 방향에는 숫자를 붙이기로 했다. 정확한 세계의 명칭은 아니었지만 길을 기록하려면 기준이 필요했다.

실렌이 선두에서 주변을 살폈다. 가레스와 내가 그 뒤를 걸었고 엘리안과 미라가 가운데에 섰다. 브람은 후방을 맡았다.

“왜 내가 맨 뒤지?”

그가 물었다.

“뒤에서 싸우는 사람이라며.”

가레스가 대답했다.

브람은 무언가 반박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황야에서는 걸음을 세는 것부터 어려웠다.

소르피갈 지하의 통로는 일정한 크기의 돌로 만들어져 있었다. 하지만 바깥에는 똑바른 길도, 거리를 재는 표식도 없었다. 언덕을 오르고 나무를 피해 걷다 보면 방향이 조금씩 틀어졌다.

실렌은 해의 위치와 바람, 나무에 낀 이끼를 살폈다. 나는 나침반과 그녀의 판단을 비교하며 지도를 그렸다. 미라는 길가에서 발견하는 모든 것에 관심을 보였다.

처음 보는 꽃.

표면이 유난히 매끄러운 돌.

빛을 받으면 색이 변하는 벌레의 껍질.

그녀가 걸음을 멈출 때마다 브람이 재촉했다.

“그런 걸 전부 조사하다가는 에를리퀸에 도착하기 전에 늙어 죽겠어.”

“이 돌은 보통 돌이 아니야.”

“내 눈에는 돌인데.”

“그러니까 네가 마법사가 아닌 거야.”

“다행이군.”

두 사람의 말다툼을 듣던 엘리안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조용히.”

멀리서 새들이 한꺼번에 날아올랐다.

실렌은 이미 활을 들고 있었다.

“무언가 온다.”

키가 큰 풀밭이 흔들렸다.

바람과 반대 방향이었다.

우리는 곧바로 대형을 갖췄다. 가레스와 내가 앞으로 나섰고, 브람은 미라와 엘리안의 옆을 지켰다.

풀숲에서 짐승들이 튀어나왔다.

소르피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들짐승과 비슷했지만 몸집이 훨씬 컸다.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입가에서는 검은 침이 흘렀다.

“물리지 마!”

엘리안이 외쳤다.

첫 번째 짐승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는 방패로 머리를 쳐서 방향을 틀었다. 놈이 옆으로 비틀거리는 순간 가레스의 검이 목을 베었다.

실렌의 화살은 두 번째 짐승의 눈에 박혔다.

세 번째 놈은 방향을 바꾸어 미라에게 달려들었다.

브람이 앞을 막았지만 짐승의 몸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함께 넘어졌다. 미라가 주문을 외우려 했지만 너무 가까웠다.

나는 달려가 놈의 옆구리를 찔렀다.

짐승이 몸을 돌리며 발톱을 휘둘렀다. 갑옷 위로 충격이 전해졌다. 뒤이어 브람의 단검이 놈의 배를 갈랐다.

마지막 짐승은 실렌을 향했다.

그녀는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두 번째 화살을 쏘고 몸을 옆으로 돌렸다. 화살이 짐승의 입 안으로 들어갔다.

전투는 끝났다.

브람이 바닥에 누운 채 숨을 몰아쉬었다.

“내가 왜 뒤를 맡았는지 알겠군.”

미라가 손을 내밀었다.

“나를 지키려고?”

브람은 그녀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네가 죽으면 보석을 팔 수 없으니까.”

“걱정해줘서 고마워.”

“그런 뜻이—”

“알아.”

미라가 웃었다.

엘리안은 짐승의 발톱에 긁힌 내 어깨를 살폈다. 갑옷 덕분에 깊은 상처는 아니었다.

“독은 없는 것 같아. 그래도 열이 나면 바로 말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보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다른 점이었다.

짐승들은 배가 고파서 공격한 것이 아니었다. 놈들의 몸은 마르고 병들어 있었지만, 먹이를 노리는 움직임과는 달랐다. 누군가에게 쫓기거나 억지로 흥분한 것처럼 보였다.

실렌은 풀숲에 남은 자국을 살폈다.

“북쪽에서 왔어.”

“그쪽에 뭐가 있지?”

“가보면 알겠지.”


우리는 북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에를리퀸은 서쪽에 있을 가능성이 컸지만, 짐승들이 온 방향을 확인하지 않고 지나치기는 어려웠다. 가까운 곳에 둥지나 더 큰 위험이 있다면 돌아오는 길에 습격당할 수도 있었다.

숲 가장자리에 이르자 작은 공터가 나타났다.

공터 중앙에는 색이 바랜 천막이 하나 서 있었다. 나뭇가지에는 짐승의 뼈와 금속 장식, 여러 색의 끈이 매달려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장식들이 서로 부딪치며 맑은 소리를 냈다.

가레스가 손을 들어 우리를 멈춰 세웠다.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실렌이 천막을 바라보았다.

“한 명.”

“위험해 보여?”

“우리가 오는 걸 기다리고 있어.”

천막 안에서 늙은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섯 여행자여, 밖에 서 있지 말고 들어오너라.”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브람이 작게 중얼거렸다.

“기억을 잃은 이야기는 하지 않는 편이 좋겠어.”

“왜?”

미라가 물었다.

“미리 알고 있을 것 같아서.”


천막 안에는 집시 예언자가 앉아 있었다.

그녀의 앞에는 작은 수정구슬과 여러 색의 돌이 놓여 있었다. 천막은 밖에서 보았을 때보다 넓게 느껴졌고, 향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여인은 우리에게 이름을 묻지 않았다.

그녀는 먼저 가레스를 바라보았다.

“맹세는 남아 있지만, 맹세한 순간은 잃어버렸구나.”

가레스의 얼굴이 굳었다.

다음에는 실렌을 바라보았다.

“너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구나. 돌아보면 다시 떠날 수 없을까 두려워서.”

실렌의 손이 활 쪽으로 움직였다.

여인은 브람에게 시선을 옮겼다.

“믿지 않는 척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패지.”

브람은 웃지 않았다.

엘리안을 향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네 기도는 아직 닿고 있다. 누구에게 닿는지는 너도 모르지만.”

엘리안이 성표를 움켜쥐었다.

마지막으로 미라를 바라본 여인의 눈빛이 달라졌다.

“너는 문을 보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은 벽만 보는 곳에서.”

미라가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무슨 문이죠?”

“아직은 벽이다.”

그리고 여인은 나를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나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루나.”

여인이 내 이름을 불렀다.

가레스가 검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우리는 이름을 말한 적이 없는데요?”

“이름은 말하지 않아도 존재한다.”

여인은 수정구슬 위에 손을 올렸다.

내 모습이 구슬 표면에 비쳤다. 그러나 잠깐 동안, 비친 얼굴이 내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눈동자 뒤로 별빛 같은 것이 흘렀다.

나는 눈을 깜빡였다.

수정구슬에는 다시 평범한 내 얼굴만 남아 있었다.

“제가 누군지 압니까?”

내가 물었다.

여인은 직접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우리를 한 사람씩 불러 각자의 색과 별자리를 알려주었다.

루나에게는 하나의 색과 별자리.

가레스에게는 또 다른 색과 별자리.

실렌과 브람, 엘리안과 미라에게도 각각 다른 표식이 주어졌다.

나는 그것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이게 무엇을 뜻하죠?”

“지금은 아무것도.”

“그럼 왜 알려주는 겁니까?”

“언젠가 누군가가 너희에게 물을 테니까.”

“누가 묻죠?”

여인은 수정구슬에서 손을 뗐다.

“그 질문에 답하려면 아직 너무 많은 길을 걸어야 한다.”

우리가 더 물어도 그녀는 입을 열지 않았다.

천막을 나오기 직전, 여인이 내게 말했다.

“맡은 물건을 잃어버리지 마라.”

나는 걸음을 멈췄다.

양피지 두루마리는 배낭 안에 들어 있었다. 천막에 들어온 뒤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그 안에 무엇이 적혀 있습니까?”

그러나 여인은 이미 눈을 감고 있었다.


공터를 떠난 뒤에도 한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브람이었다.

“다시는 예언자를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군.”

“두려웠어?”

미라가 물었다.

“아니. 남의 사정을 허락도 없이 아는 사람이 무례하다고 생각할 뿐이야.”

가레스는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다.

“우리를 알고 있었어.”

“그런 척했을 수도 있지.”

“루나의 이름은 어떻게 알았지?”

브람은 대답하지 못했다.

엘리안이 나를 바라보았다.

“수정구슬에서 뭔가 본 거야?”

“내 얼굴을 봤어.”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다른 것처럼 느껴졌어.”

“어떻게?”

“설명할 수 없어.”

미라는 다시 천막으로 돌아가고 싶은 표정이었다.

“수정구슬을 조사해 봐야 해.”

가레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안 돼.”

“만져보기만 하면—”

“더더욱 안 돼.”

나는 지도를 펼쳤다.

집시의 천막과 여섯 사람의 색, 별자리를 기록했다. 지금은 이해할 수 없는 단서였다. 그러나 노인이 말한 에를리퀸처럼 언젠가는 의미가 생길 것이다.

우리는 다시 북동쪽으로 걸었다.


숲은 갈수록 어두워졌다.

나무 사이의 길은 여러 갈래로 갈라졌고, 땅에는 무거운 물건을 끌고 간 흔적이 남아 있었다. 짐승들의 발자국도 같은 방향으로 이어졌다.

실렌이 앞서가다 손을 들었다.

“동굴이 있어.”

나무와 바위 사이에 검은 입구가 보였다.

동굴 앞에는 부러진 나무판자가 놓여 있었다. 미라가 먼지를 닦아내자 희미한 글자가 나타났다.

‘들어오는 자는 열세 번의 시련을 각오하라.’

브람이 문장을 두 번 읽었다.

“들어오지 말라는 뜻을 굉장히 복잡하게 적어놓았군.”

가레스는 입구 주변의 발자국을 살폈다.

“안으로 들어간 흔적은 많다.”

“나온 흔적은?”

실렌이 대답했다.

“거의 없어.”

동굴 안에서는 규칙적인 소리가 들렸다.

돌이 갈리는 소리.

무거운 물체가 끊임없이 움직이는 소리.

자연적으로 생긴 동굴에서 날 만한 소리는 아니었다.

미라가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가레스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오늘은 안 돼.”

“입구만 살펴보면 돼.”

“해가 지고 있어.”

가레스가 나를 바라보았다.

결정은 내 몫이었다.

우리의 목적은 에를리퀸이었다. 지하의 노인이 맡긴 양피지를 아가르에게 전해야 했다. 이 동굴은 그 임무와 아무 관계가 없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짐승들의 흔적은 이곳으로 이어졌다.

동굴 안의 기이한 소리 역시 마음에 걸렸다.

나는 지도를 꺼내 입구의 위치를 표시했다.

“오늘은 돌아간다.”

미라가 아쉬운 얼굴로 동굴을 바라보았다.

“대신 내일 다시 올 거야.”

가레스가 나를 쳐다보았다.

“반드시 들어가야 하나?”

“무시하고 지나가면 계속 뒤가 신경 쓰일 거야. 돌아오는 길에 무엇이 튀어나올지도 모르고.”

실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확인하는 편이 나아.”

가레스는 더 반대하지 않았다.

우리는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소르피갈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돌아가는 길에도 나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동굴의 입구는 곧 나무 사이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 안에서 들려오던 규칙적인 마찰음은 오랫동안 귀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집시 여인의 말도 떠나지 않았다.

미라는 다른 사람들이 벽만 보는 곳에서 문을 보게 될 것이다.

나는 맡은 물건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우리 앞에는 아직 아무 의미도 없는 수많은 단서가 흩어져 있었다.

그것들이 하나로 이어질 날이 올까.

다음 날 아침, 우리는 평소보다 많은 식량을 챙겼다.

미라는 남겨둔 보석을 모두 가져갔고, 브람은 도구의 끝을 다시 갈았다. 실렌은 화살 한 발 한 발을 살폈으며, 엘리안은 해독과 보호의 기도를 준비했다.

가레스는 자신의 방패와 내 방패의 끈을 함께 점검했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들어간다.”

그가 말했다.

“왜?”

“대장이 쓰러지면 누가 철수를 명령하지?”

“네가 하면 되잖아.”

“그럴 생각은 없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의 눈빛은 진지했다.

나는 더 고집하지 않았다.

우리 여섯 명은 다시 성문을 나섰다.

이번 목적지는 에를리퀸이 아니었다.

열세 가지 시련이 기다리는 이름 없는 동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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